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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는 억울하다.

널리 알려진 이솝우화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년 내내 열심히 땀 흘려 일한 개미는 겨울이 되어 추위가 닥치자 곡식을 쌓아놓고 안정적으로 겨울을 보내지만, 일하는 개미를 비웃으며 노래를 부르며 마냥 놀기만 했던 욜로족 베짱이는 겨울이 되자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개미의 집을 찾아가 동냥을 하고 결국은 얼어 죽는다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함의 대명사로, 베짱이는 게으름뱅이의 대표주자로 곧잘 인용되게 됩니다.

과연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로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룰루랄라 노래나 부르는 게으름뱅이일까요?

 

그런데 이 우화는 원래 '개미와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와 매미'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그의 책 곤충기 매미편에서 원래 '개미와 매미'였던 이솝우화가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개미와 여치'로 바뀌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그 이유로 매미는 열대, 아열대, 온대에서 사는 곤충으로 그리스를 비롯 남유럽에도 서식하는 곤충입니다(이솝우화의 지은이 아이소포프는 그리스인입니다) . 그러나 유럽 북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북유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여치로 번역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치는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베짱이로 번역이 됩니다. 사실 베짱이는 가을이 되어야 울기 때문에 여름철에 노래했던 이솝우화의 그 곤충은 베짱이가 아니라 여치라고 해야 더 맞을 것입니다. 참고로 터키어로는 매미와 베짱이가 똑같이 ağustos böceği(아우스토스 뵈제이)라고 합니다.

 

파브르는 더 나아가 이 우화가 매미가 먹지도 못할 곡식이나 벌레 시체를 구걸하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힌 매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적었습니다. 매미는 곡식도 벌레사체도 아닌 나무 수액을 빨아먹고 삽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입이 얇은 빨대처럼 생겼습니다.

 

개미와 매미, 개미와 여치, 개미와 베짱이..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개미와 베짱이가 입에 짝 붙긴 합니다..

 

이솝우화에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의 대표로 그려진 이 곤충들은 이야기처럼 실제로도 그럴까요?

 

때로는 자기 몸의 몇 십배나 되는 먹이를 물고 그 얇은 다리로 끝끝내 물어 나르는 개미들을 보면 정말 부지런한 대단한 곤충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개미 사회는 사회성을 가지며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생식을 담당하는 생식계급인 여왕개미와 수개미, 우화하면서부터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계급인 일개미로 각자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먹이 채집은 일개미의 주요 역할입니다. 과연 개미집단의 모든 일개미가 우화에서처럼 뙤약볕 아래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쟁이일까?

 

 

최근의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연구는 여러 집단의 개미들을 관찰한 결과 부지런한 개미가 더 많긴 하지만 게으름 피우는 개미도 많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말해줍니다. 각 집단에서 일개미의 40%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개미 중 20%가 없어지면 게으름 피우던 개미 중 일부가 일주일 안에 일을 시작해 부지런해졌다고 합니다. 게으른 개미가 예비 노동력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축구 경기의 교체멤버와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반대로 게으른 개미를 덜어내도 부지런한 개미가 게을러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또 개미가 한여름에도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것은 그들이 겨울을 나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개미는 땅 속 집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 때문에 미리 먹이를 저장해놓지 않으면 굶어 죽기 쉽상입니다..

 

매미도 여치도 베짱이도 결코 놀지 않습니다. 매미나 여치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부르기 위해 수컷이 내는 소리입니다. 날씨가 추워지지 전에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해야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수컷들은 여름 내내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필사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우화한 베짱이는 9월에서 10월이 암컷을 유혹해서 짝짓기를 하고 자손을 남기는 시기입니다. 베짱이는 알이나 번데기의 상태로 겨울을 보내고 알을 낳은 베짱이는 곧 죽게 됩니다.

 

여치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7년을 지내고 여름에 우화하는 수컷매미도 울음소리로 암컷을 유인해 짝짓기를 한 뒤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습니다. 우화하고 2~3주 번식활동을 하고 죽는 것입니다

 

 

 

여름에 우화하여 울음으로 암컷을 유인하여 짝짓기를 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죽는 매미와 여치, 그리고 베짱이..

 

그러니 매미도 여치도 베짱이도 기나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먹이를 저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게으름뱅이라서가 아니라.